아이 세 명을 키우는 것이 만만치 않아 그동안 가족 여행은 엄두도 못 냈다는 민성헌 대리가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이천에 있는 워터파크로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한 것. 이곳을 택한 이유는 실내 풀장과 야외 온천은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는 슬라이드까지 마련돼 물놀이와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워터파크에 가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기대에 부풀어 싱글벙글한다. 최근 부쩍 바람이 쐬고 싶었던 아내 김운미 씨도 내심 반가운 눈치다.
자고로 훌륭한 코스 요리는 애피타이저로 먼저 입맛을 돋우는 법. 물놀이를 하기 전에 민성헌 대리 가족은 이천 9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설봉공원을 둘러보기로 한다. 호수 주변을 따라 산책과 가벼운 등산을 할 수 있는 설봉공원은 해마다 이천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이천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공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도자기 전시관에 들어가기도 하고, 도자기 파편으로 만든 벤치에 앉아보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둘째 지원이가 “우와”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코끼리 조각상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책에서만 보던 거대한 코끼리를 가까이에서 보니 신기한가 보다. 물론 조각상이긴 하지만 막내 지효도 언니를 뒤따라 쪼르르 달린다.
“언니보다 내가 먼저 갈 거야.”
얌전한 줄만 알았던 두 딸 간의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다섯 살인 지원이와 세 살인 지효는 나이 차이가 두 살밖에 나지 않는데다 취향도 비슷해서 사소한 일로 서로 질투를 느낀단다. 특히 동생 지효가 언니 지원이를 시샘하는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첫째 지훈이가 중간에서 중재를 잘한다. 오빠의 눈에는 동생들의 질투도 그저 귀엽기만 한 모양이다.
“어른들이 아이를 여럿 낳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이런 건가 봐요”라며 민성헌 대리가 삼 남매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지훈이는 오빠라는 책임감으로 동생들을 돌보고, 엄마와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은 두 딸의 몫이다.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역할 분담을 하는 세 남매의 모습에 아빠와 엄마는 늘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함께여서 행복한 첫 순간들
워터파크에 도착하니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특히 워터파크까지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려 입을 삐쭉 내밀던 지원이가 만족한 눈치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수영복 자랑을 한다.
“제 수영복 한번 보실래요? 꽃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진짜 예뻐요. 지효 거는 키티 수영복이고 엄마 거는 노란색이에요. 그런데 아빠는 수영복이 없어요.”
“아빠는 반바지 입고 들어가면 되니까 없어도 괜찮아”라며 아내 김운미 씨에게 옷을 건네받는 민성헌 대리. 심지어 수영도 못하지만 상관없단다. 어차피 아이들과 수심이 낮은 풀장에서 놀다가 아내와 온천에서 피로를 풀 테니 수영 실력은 전혀 필요 없다는 것.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은 아빠 엄마의 도움을 받아 수영복을 입고 구명조끼 버클까지 채웠다.
“우와, 물이다!”
풀장을 발견한 지훈이와 지원이가 전력으로 질주한다. 지효도 오빠와 언니를 따라 뛰기 시작한다. 아내 김운미 씨는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며 걱정의 눈길을 보내지만, 물놀이할 생각에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곳곳에서 눈길을 주고받는 연인들을 보니 연애 시절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저희도 연애 때는 꽤 낭만적인 연인이었어요. 주말마다 극장에서 최신 영화를 섭렵하고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면 바닷가에서 데이트를 즐겼으니까요. 그러다 결혼해 아이 셋을 낳고 키우다 보니 여유를 잃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막내 지효가 많이 컸으니 앞으로는 가족 여행을 자주 다닐 계획이란다. 얼마 전에는 놀이동산에 다녀오기도 했다.
“요즘 첫 경험을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 온 가족이 처음으로 놀이동산에 다녀왔고, 오늘 처음으로 워터파크에 왔으니까요. 앞으로 가족과 함께할 모든 첫 순간이 기다려져요”라며 민성헌 대리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자상한 아빠, 듬직한 남편
이번에는 실외 풀장으로 향한다. 민성헌 대리와 아내 김운미 씨가 지효에게 보행기 튜브를 태우는데 “으앙”하는 소리와 함께 지원이가 물 위로 올라온다.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 물에 빠진 것이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입술도 파래졌다. 민성헌 대리가 쏜살같이 달려와 안아주며 달래지만 여전히 겁먹은 모습이다. 물가에는 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혼자 서성거리는 지원이를 보는 민성헌 대리의 눈길이 걱정으로 가득 찼다. 그렇다고 잘 노는 지훈이와 지효를 두고 풀장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 민성헌 대리는 지원이를 번쩍 안아 조금씩 몸을 낮추며 수심이 낮은 온천탕에 들어간다. 지원이가 놀라지 않고 천천히 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평소에도 자상해요. 평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노력하고요. 퇴근 후 동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자고 유혹해도 곧장 집으로 뛰어오거든요. 아이들도 이제 습관이 돼서 아빠가 오기 전까지는 배고프다는 말을 안 해요. 주말에는 함께 장을 보고 설거지도 나서서 해요. 가끔 요리 솜씨를 뽐낼 때도 있는데 뛰어나지는 않아도 국수 같은 요깃거리는 잘하는 편이에요.”
아내 김운미 씨가 남편 자랑을 마치자 저쪽에서 민성헌 대리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놀랍게도 지원이가 조심스레 발장구를 치고 있다. 두 손은 아빠를 꼭 잡고 있지만,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
그동안 가족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는 민성헌 대리. 그러나 함께한 추억이 적다는 건 그만큼 만들어갈 이야기가 많다는 뜻 아닐까? 갑갑한 아파트를 떠나 넓은 공원을 뛰어다니고 실컷 물놀이를 즐긴 오늘을 시작으로 더 많은 추억을 쌓아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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